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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장윤창 교수 별세, 레전드의 업적

by dazzimawha 202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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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한국 남자배구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선수 장윤창 경기대 교수가 65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스카이서브 창시자이자 돌고래 스파이커로 불린 그의 생애와 업적을 돌아봅니다.


한국 배구계의 거목, 장윤창 교수 타계

2025년 5월 30일, 한국 배구계에 큰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1980-90년대 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윤창 경기대 교수가 지병인 위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65세.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장윤창, 한국 배구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

놀라운 재능으로 시작된 배구 인생

장윤창 교수는 1978년 인창고등학교 2학년 때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배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이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국제무대에서의 찬란한 성과

장윤창 선수는 국가대표로서 수많은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 한국 남자배구 역사상 최고 성적인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 아시안게임 은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실업리그 시대의 스타

1983년 '조직력 배구'의 대명사인 고려증권의 창단 멤버로 참가해 현대자동차써비스와 함께 실업 배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습니다. 1984년 슈퍼리그에서는 호쾌한 공격으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돌고래 스파이커'와 '스카이서브'의 창시자

혁신적인 기술의 선구자

장윤창 선수를 대표하는 것은 바로 스카이서브입니다. 남자배구 처음으로 '스카이 서브'를 선보였고, 이는 현재 배구에서 당연시되는 스파이크 서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한국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를 개인 전술로 활용한 선수이자, 세계적으로도 최초에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돌고래를 닮은 우아한 공격

활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타점 높은 공격으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197cm 키에서 나오는 체공력과 백어택은 관중들을 매료시켰으며, 한국 배구사에 영원히 기억될 명장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은퇴 후 교육자의 길

학문적 성취

현역 은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인 경기대에서 체육학과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배구계 발전을 위한 기여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위원을 역임하며 한국 배구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가족과 개인적 삶

철저한 자기관리

은퇴 후에도 술도, 담배도 하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몸관리를 했던 장윤창 교수는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보여줬습니다.

아들 장민국

흥미롭게도 장윤창 교수의 아들 장민국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택해 농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장민국은 최근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베테랑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감격을 누린 바 있습니다.

 

 


배구계의 추도와 추억

동료들의 회고

고려증권 멤버였던 박주점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장은 "장윤창 교수가 작년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장 교수는 1980년 한국 남자배구를 풍미했던 최고의 스타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김세진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본부장은 "아침에 선배님 소식을 들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며 슬퍼했습니다.


한국 배구사에 남긴 유산

장윤창 교수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배구의 기술적 발전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스카이서브는 후배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배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Q&A - 장윤창 교수에 대한 궁금증

Q1: 장윤창 선수는 언제부터 배구를 시작했나요?

A: 장윤창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 육상에 재능을 보였으나, 중학교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습니다. 인창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였습니다.

Q2: '돌고래 스파이커'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A: 장윤창 선수의 유연한 허리와 높은 체공력을 이용한 공격 자세가 마치 돌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돌고래 스파이커'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Q3: 스카이서브는 무엇인가요?

A: 스카이서브는 현재의 스파이크 서브를 말합니다. 장윤창 선수가 한국 최초로 이 기술을 개발하고 실전에 도입했으며, 이는 전 세계 배구 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Q4: 장윤창 교수의 주요 성과는 무엇인가요?

A: 1978년 세계선수권 4강(한국 남자배구 최고 성적),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1978년, 1982년), 은메달 1개(1986년), 1984년 슈퍼리그 MVP 등이 주요 성과입니다.

 

Q5: 은퇴 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A: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석사,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Q6: 장윤창 교수의 별세 원인은 무엇인가요?

A: 장윤창 교수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중 2025년 5월 30일 6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Q7: 장례식은 언제 어디서 치러지나요?

A: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Q8: 장윤창 교수의 아들도 운동선수인가요?

A: 네, 아들 장민국은 농구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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